2020년 3월 22일 일요일

걱정의 본질은 무엇일까?

'난 걱정없이 살고 싶은 것이다'

첫번째 글, 
'모든것의 본질은 무엇인가?'에서 밝힌 걱정없이 살고 싶다는
내 인생의 목적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면의 다양한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한다.

돈, 건강, 사랑

이 세가지 조건이 만족되면 내 인생은 큰 걱정없이 마무리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학교에 다니며 의식주 그러니까 옷, 밥, 집이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필수요소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 의식주는 물질이 부족한 시절에 정말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일 뿐 적어도 현대의 대한민국에서 이 세가지가 부족하여 죽거나 처절하게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인구수는 극히 적을 것이라 본다.

의식주는 모두 돈으로 무한정 끌어모을 수 있는 물질적인 생존 도구들이다. 요즘 시대에 옷을 스스로 기워 입는 사람이 있는가? 아니면 집을 직접 짓는 사람이 있는가? 밥을 먹기 위해 쌀농사를 해서 먹는 사람이 있는가? 

모두 돈이라는 모두가 약속해 놓은 가상의 가치지표를 가지고 거래를 할 수 있다. 즉, 돈이 많으면 생존의 필수요소 세가지 의식주는 해결이 된다. 

위 결론을 반대로 말하면 현대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며, 이는 곧 걱정없이 살기 위해 절대적 기본 조건인 생존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돈, 건강, 사랑 중 생존에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물론 건강이겠지만 돈도 건강에 상당한 비중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사랑의 크기도 내가 버틸 수 없을만큼 결핍되면 생존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범죄, 반사회적 행동, 자살 등으로 이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걱정없이 살기 위해서 혹은 최소한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완전한 외로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튼 우리 모두는 의식주라는 근대시대 이전 모든것이 부족할때 필요한 생존의 3요소를 돈, 건강, 사랑으로 바꿔서 이 것들이 최소한 결핍되지 않게 노력하면서 살아야하고, 정말 걱정없이 살고 싶다면 이 세가지를 적정 수준 이상으로 항상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 얼마만큼의 돈과 건강 그리고 사랑을 갖고 있어야 결핍수준을 벗어나고 나아가 적정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은 걱정하지 않기 위해 별걱정을 다해야만 한다. 아무런 걱정이나 고통이 없다는 열반의 경지에 이른 그 부처조차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걱정과 고뇌를 했을까?

얼마나 걱정과 고뇌를 피하고 싶었기에 부좌를 틀고, 세상을 등지고, 자신의 말씀을 책으로까지 남겨야만 했을까? 

오늘의 질문인 걱정의 본질은 무엇인가? 에 대한 대답은 걱정의 본질은 걱정이라는 것이다. 걱정을 하기 때문에 걱정을 하게 되고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난 부처조차도 최후의 마지막 순간에는 '과연 내가 정말 지금 아무 걱정도 하지 않는 것이 맞을까?' 하는 걱정을 하며 이승의 삶을 마무리 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듯 생존 자체가 곧 걱정이다. 죽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정보와 자극들에서 답을 내어야 하도록 진화되어 온 것이 인간이고 생물의 생존 매카니즘이다.

생존해 있는 한 완전한 無의 상태의 걱정은 있을 수 없지만 적어도 결핍수준에 이르러 절규하며 살아가기는 너무나 불행하지 않은가?

앞으로 수치화 시키기 쉬운 돈으로 시작해서 건강과 사랑에 대해 몇편에 걸쳐서 이야기를 이어가 볼까 한다. 

일단 얇은피 만두 좀 사서 먹고 이야기를 더 해보자
진짜 맛있다
맛 걱정하지말고 일단 사서 먹어보자.





2020년 3월 2일 월요일

모든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는 왜 살아가는가?'

사춘기 이후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위해 평생을 살아간다.


나만 그런것일까? 


당신도 나도 그리고 태어날 다음 세대의 인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만 너무 늦게 변하거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삶을 이어나가는 시간 동안에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왜 살아가는가?'


이 질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라서 거의 변하지 않는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 불변의 질문을 유독 최근에 나는 스스로에게 많이 던져보고 있다.


근데 또 왜 사는지에 대한 것에는 사실 별 이유는 없다. 


어느 순간 나는 태어나 있었고, 어느 순간 나라는 존재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고, 나이를 먹었고, 사회 구성원이 되어 있었다.


이왕이면 잘 살아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사랑하고 또 받으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내가 뭐 빌게이츠나 워렌버핏, 메이웨더 같이 유명하고 거창하게 되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는 것도 아니고, 떡볶이나 먹으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보고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게 내 바램일 뿐이다.


그치만 이 평화롭고 별거 아닌 바램이 가끔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돈을 못버는 것도 아니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또한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그리는 뭔지 모를 인생의 목표에는 다다르지 못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난 인생의 목표가 없다.

목표가 뚜렷해서 너무나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딱히 내가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 일지도 모르겠지만 딱히 그런것 없이 살아가고 싶다.


오! 그런것 보면 나는 인생의 목표가 걱정없이 사는 게 목표인 것이 아닐까?.


아! 여기서 내 인생의 목표 하나를 정확히 알았다.


'난 걱정없이 살고 싶은 것이다.'


좋아, 걱정없이 살고 싶다

그러면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걱정하지 않기 위해 다시 걱정을 만든다.


당신과 나는 살아있기 때문에 걱정을 하고 생각을 한다.


그러면 생각을 하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 글의 제목처럼 모든 것의 본질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발생한다.

내가 짝사랑하는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한 내 거국적 계획도,
내일 부장님이 물어보실 내가 먹고싶은 점심메뉴
(결국은 자기가 먹고싶은거 먹을 거면서)에 대한 고민도,
코스피가 어디까지 폭락해서 내 인생도 폭락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전부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걱정과 고민을 안하려면 조용히 인생 종료버튼 누르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난 걱정없이 살고 싶기 때문에 진짜로 지금 당장 걱정할 일이 없어져 버리면 내 인생의 목표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난 결코 인생 종료버튼을 눌러서는 안된다.

이런 X같은 글을 계속 읽고 있는 당신은 왜 그런것일까?

난 그 심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

지금 내가 왜 이 글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심리이다. 난 심리학자도 아니고 이 심리에 대한 정확한 심리적 매카니즘에 대해 전문가인척 구글링해서 찾아보고 당신에게 전문적인척하고 싶지않다.

그렇지만 경험적으로 난 이런 나 조차도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 내가 자주 노출된다는 것은 알고있다.

그러니깐 당신도 이런 상황에 종종 노출될 때가 있을텐데 그게 마침 지금일 뿐이다.

당신이 이 글을 왜 읽게 되었는지 지금쯤 어이가 없을 때 쯤 이 글을 마치려한다.

하지만 오늘 제목에 대한 정리는 확실히 해주고 마치는게 시간을 들여서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듯 하다.

모든 것의 본질은 당신이 살아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물질의 본질이든 우주만물의 규칙을 설명하는 이론이든 인간심리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이든 결국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답을 받으려 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고통받고 있는 시간이 길더라도, 혹은 인생이 허무하더라도 모두가 오히려 당신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심리적 반응들이니 걱정 하지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일단 꼭 아래 풀무원 얇은피만두는 먹어보고 포기하자.

솔직히 얇은피만두 한두개 먹은 이후에는 수십분정도는 아무런 걱정이 없는 나를 발견할 수 밖에 없다.





다음 시간에는 내가 걱정없이 살기 위해 내리고 있는 나 자신의 결론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만두 어짜피 언젠가는 먹을 텐데 위에 링크에서 몇개 사서 먹는 건 어떨까 싶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