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걱정없이 살고 싶은 것이다'
첫번째 글,
'모든것의 본질은 무엇인가?'에서 밝힌 걱정없이 살고 싶다는
내 인생의 목적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면의 다양한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한다.
돈, 건강, 사랑
이 세가지 조건이 만족되면 내 인생은 큰 걱정없이 마무리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학교에 다니며 의식주 그러니까 옷, 밥, 집이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필수요소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 의식주는 물질이 부족한 시절에 정말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일 뿐 적어도 현대의 대한민국에서 이 세가지가 부족하여 죽거나 처절하게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인구수는 극히 적을 것이라 본다.
의식주는 모두 돈으로 무한정 끌어모을 수 있는 물질적인 생존 도구들이다. 요즘 시대에 옷을 스스로 기워 입는 사람이 있는가? 아니면 집을 직접 짓는 사람이 있는가? 밥을 먹기 위해 쌀농사를 해서 먹는 사람이 있는가?
모두 돈이라는 모두가 약속해 놓은 가상의 가치지표를 가지고 거래를 할 수 있다. 즉, 돈이 많으면 생존의 필수요소 세가지 의식주는 해결이 된다.
위 결론을 반대로 말하면 현대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며, 이는 곧 걱정없이 살기 위해 절대적 기본 조건인 생존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돈, 건강, 사랑 중 생존에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물론 건강이겠지만 돈도 건강에 상당한 비중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사랑의 크기도 내가 버틸 수 없을만큼 결핍되면 생존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범죄, 반사회적 행동, 자살 등으로 이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걱정없이 살기 위해서 혹은 최소한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완전한 외로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튼 우리 모두는 의식주라는 근대시대 이전 모든것이 부족할때 필요한 생존의 3요소를 돈, 건강, 사랑으로 바꿔서 이 것들이 최소한 결핍되지 않게 노력하면서 살아야하고, 정말 걱정없이 살고 싶다면 이 세가지를 적정 수준 이상으로 항상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 얼마만큼의 돈과 건강 그리고 사랑을 갖고 있어야 결핍수준을 벗어나고 나아가 적정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은 걱정하지 않기 위해 별걱정을 다해야만 한다. 아무런 걱정이나 고통이 없다는 열반의 경지에 이른 그 부처조차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걱정과 고뇌를 했을까?
얼마나 걱정과 고뇌를 피하고 싶었기에 부좌를 틀고, 세상을 등지고, 자신의 말씀을 책으로까지 남겨야만 했을까?
오늘의 질문인 걱정의 본질은 무엇인가? 에 대한 대답은 걱정의 본질은 걱정이라는 것이다. 걱정을 하기 때문에 걱정을 하게 되고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난 부처조차도 최후의 마지막 순간에는 '과연 내가 정말 지금 아무 걱정도 하지 않는 것이 맞을까?' 하는 걱정을 하며 이승의 삶을 마무리 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듯 생존 자체가 곧 걱정이다. 죽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정보와 자극들에서 답을 내어야 하도록 진화되어 온 것이 인간이고 생물의 생존 매카니즘이다.
생존해 있는 한 완전한 無의 상태의 걱정은 있을 수 없지만 적어도 결핍수준에 이르러 절규하며 살아가기는 너무나 불행하지 않은가?
앞으로 수치화 시키기 쉬운 돈으로 시작해서 건강과 사랑에 대해 몇편에 걸쳐서 이야기를 이어가 볼까 한다.
일단 얇은피 만두 좀 사서 먹고 이야기를 더 해보자
진짜 맛있다
맛 걱정하지말고 일단 사서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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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이 곧 칭찬이오 칭찬이 곧 욕이로다
왜냐하면 욕먹을 글은 아니지만
칭찬할 글도 아니기 때문이다.